프랑스 생활, 문화

내가 살았던 동네 DRANCY.

elephantman 2021. 2. 21. 23:01
반응형

내가 살던 곳은 Drancy라고 하는 파리 북동쪽에 위치한 작은 도시다.
한국 유학생이나 교민들에게도 자칫 생소할 수 있으나 RER B선을 타고 샤를 드골 공항을 자주 오가던 사람이라면
DRANCY라는 이름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지역이름을 두 자리 숫자로 나타내는 방식이 있는데, 예를 들면
파리는 75
보르도는 33
이런식이다.

내가 살던 곳은 93이라고 하는 Seine-Saint-Denis라고 한다.
en.wikipedia.org/wiki/Seine-Saint-Denis

Seine-Saint-Denis - Wikipedia

Department of France Department in Île-de-France, France Seine-Saint-Denis (French pronunciation: ​[sɛn sɛ̃ d(ə)ni]) is a French department located in the Île-de-France region and in the Grand Paris. Locally, it is often referred to colloquially a

en.wikipedia.org

Drancy는 그 93 지역의 도시중 하나이다.

파리를 기준으로 북동쪽에 위치해 있는데,
문제는 이곳의 분위기가 꽤 흉흉하다는 점 ㅎㅎㅎㅎ
나는 몰랐다. 무작정 내 아내가 살던 곳으로 들어갔지만 여기가 그런 곳인지는...

주위에 파리 출신의 프랑스 사람이 있다면
93 지역에 대해 물어보길 바란다.
프랑스 영화 중에 뱅상 카셀 초창기 영화인 "증오 La haine" 를 보면 딱 이 지역 분위기라 하겠다.

다행히 Drancy는 그 93지역 안에서 비교적 평온한 지역중 하나였다.

지금 당장 구글 검색창에 most dangerous city around paris 정도로 검색을 해보시라.
그러면 93 지역의 도시 이름들이 당당히 상위권에 랭크되어있는 걸 확인해볼 수 있다.

일단 파리 안을 포함해서 북동쪽 <--> 남서쪽의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파리 내에서는 남동쪽의 8, 16구 같은 곳이 우리가 익히 알아온 파리의 럭셔리한 모습이라고 보자면
파리 18,19구를 포함해 파리 바깥의 93 지역이 저소득층, 이민자 동네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한 유튜브에서 그 유래를 알아보니 파리지역에서는 보통 남서풍이 불기 때문에 연기가 나는 공장지대가 북동쪽에 지어지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그 근처에 저소득 노동자들이 자리 잡게 되었다는 이론이 설득력이 있어보인다.

일단 이쪽에는 한국 교민이 거의 살지 않는다.
내가 결혼신고를 했을 때 시청 직원이 DRANCY에서 결혼한 첫 한국인이라는 말을 했었으니까..
한국분들은 파리 내에선 15구에, 바깥에서도 주로 남쪽에 머문다.

파리 어디선가 만난 교민 중 한 분은 내가 거기 산다는 말을 했을 때,
"예? 어떻게 거기 살아요?" 하는 말까지 들어봤다.
심지어 프랑스인 처제조차도 우리동네 오는게 별로라고 말할 정도니....

내가 살던 곳에서 파리까지 대중교통으로 가는 2가지 방법이 있는데,
Drancy RER역까지 가서 RER (일종의 국철 라인)을 타고 들어가거나
Bobigny역까지 가서 5호선을 타고 가는 방법이다.

이 보비니라는 곳이 93 지역의 대부분의 관공서가 있어 비자업무 같은걸 거기서 보곤 했다.
아내는 저녁 7시 넘어가면 이쪽으로는 오지 말라고 할 정도로 93을 대표하는 심벌 같은 곳이다.
우연히 한국에서 본 '파리의 두 형사' (Omar Sy가 주연) 보면
이 지역 출신인 흑인 형사가 파리 경찰에게 무시를 받자
"내가 보비니 출신이라서 그러는 거야?"라는 대사까지 나올만큼 이곳은 악명이 높다.

어학원 선생님 중 하나가 어린시절을 여기서 보낸 분이 있었는데, 자신의 친구들 중 소매치기를 안 당해본 사람이 없다고 한다.

일단 이 동네에 버스를 타려고 서 있으면 이민자들이 많은 것을 눈으로 체감한다.
북아프리카계에서 오신 분들과 무슬림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느꼈다.

나와 같이 살기 전까지 15년 이상을 이곳에서 살아온 아내의 말에 의하면
처음에는 이민자들이 이렇게 많지 않았는데, 집값이 싸기 때문에 점점 많이 밀려와서 결국 그들이 대부분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무슬림들은 자신들의 방식대로 도축한 고기를 파는 HALAL이라 쓰인 정육점에서만 고기를 사는데,
점점 비율이 많아져서 결국 동네 주변에 HALAL이 아닌 정육점은 한 군데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무슬림 비율이 높아서, 라마단 기간에는 동네 자체가 굉장히 조용해진다.
아내는 그들을 길에서 마주쳤을 때 조심하라고 주의를 준다. 낮시간에 아무것도 안 먹으니 날카로워진다는 이유에서다.


DRANCY는 나름 2차 대전 전쟁의 슬픈 사연이 있는 곳.
여기가 바로 파리 등지에서 잡아온 유태인과 집시들을 모아서 아우슈비츠로 출발하는 기차를 태우는 임시 캠프 같은 곳이었다고 한다.
그 걸 기억하기 위해 열차칸 하나를 덩그러니 기념물로 보존하고 있다.

나는 시청 바로 옆의 6층짜리 아파트에 거주를 했고
DRANCY시청은 아내와 결혼을 한 바로 그 장소이기에 뜻깊은 곳이다.

그리고 또 옆쪽으로는 공원이 하나 있었는데 프랑스의 어느 공원이 그렇듯 매력을 갖고 있다.
이곳에서 임신 중인 아내와 산책을 하거나 혼자 러닝을 하곤 했다.
오리 같은 동물들이 있어서 아이들과 가기에 적당하다.

아내와 결혼을 한 곳
내 딸아이를 낳은 곳 이기에 DRANCY라는 곳은 누가 뭐래도 좋은 추억으로만 간직하고 싶다.